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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로마의 향료 광기 — 네로 황제가 황후의 장례에 쏟아부은 것 1. 오늘날 우리는 사치품의 가격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방이나 시계, 스포츠카를 떠올린다. 그러나 2천 년 전 로마에서 확실한 부의 과시 수단은 식탁 위에 놓였다. 후추 한 꼬집, 계피 한 조각, 그리고 육두구 한 알. 이 작고 볼품없는 것들이 로마 귀족들의 저녁 식사를 지배했고, 제국의 금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우리는 로마의 향료 광기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그 향신료들이 로마에 도착하기까지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그 길은 인도양의 몬순 바람에서 시작해 이집트의 사막을 건너, 마침내 로마의 식탁 위에서 절정에 달했다. 2. 로마인들이 사용한 향신료 중 가장 일상적이었던 것은 후추였다. 오늘날 식탁 위의 후추 통에 들어 있는 검은 알갱이 한 줌은, 그때에는 병사들의 급료와 맞먹는 가치를 지녔다. 후추는 .. 2026. 10. 6.
4-1화. 반다 제도의 비밀 — 세상 끝에 숨은 작은 숲 1. 당신은 오늘 아침 계란 프라이에 육두구를 한 번 갈아 넣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휴일 아침 마신 진저 브레드 라테에, 지난 겨울 끓인 밀크티에, 어머니의 미트볼에 이 향신료가 조금씩 스며 있었을 것이다. 육두구는 우리의 일상에 너무나 조용히 녹아 있어서, 그것이 한때 금보다 비싸게 거래되고, 한 섬의 주민들이 몰살당하는 이유가 되었으며, 유럽의 바다를 움직인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이 향신료를 아무렇게나 구할 수 있는 것은, 5백 년 전 지구 반대편의 작은 섬들에서 시작된 치열한 물류 전쟁의 결과다. 그 섬들은 인도네시아의 반다 제도. 세상의 끝에 숨은, 몇 개의 화산섬에 불과한 곳이었다. 2. 반다 제도는 오늘날 인도네시아 말루쿠 주의 일부로, 반다 .. 2026. 10. 1.
3-9화. 바티칸으로 가는 길 — 교황의 돌이 제국을 만든 방식 1. 당신은 도시의 랜드마크를 옮기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오늘날에도 건축물을 통째로 옮기는 이전 공사가 간혹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프로젝트다. 수백 톤에 달하는 구조물을 몇 미터만 옮겨도 언론의 주목을 받고, 공사 기간은 수개월에 달하기도 한다. 그런데 1586년 로마에서는 무게 330톤이 넘는 돌기둥 하나를 도시 한복판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 앞 광장으로 옮기는 일이 벌어졌다. 그 돌기둥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였고, 그 이동은 교황의 권력을 도시 한복판에 세우는 정치적 작업이었다. 이 돌 하나를 움직이는 데 수백 명의 인부와 말과 도르래와 밧줄이 동원되었고, 그 작업의 성공은 곧 교황청의 물류 역량이 곧 신의 권위임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2. 이 오벨리스크는 원래 이집트 헬리오폴리스.. 2026. 9. 29.
3-8화. 대리석의 빛 — 왜 카라라 돌이어야만 했는가 1. 당신은 흰 돌과 흰 종이를 구분할 수 있는가. 얼핏 보면 둘 다 그저 흰색일 뿐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이의 흰색은 빛을 그대로 되돌려 보내는 불투명한 흰색이고, 어떤 돌의 흰색은 빛을 아주 조금 통과시키는 반투명한 흰색이다. 이 미세한 차이가 위대한 예술과 평범한 공예를 가르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미켈란젤로는 바로 그 차이를 알고 있었다. 그가 카라라 대리석을 고집한 이유는 단순히 색이 희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그 돌이 빛을 받아들이는 방식,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나는 듯한 그 은은한 광채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그 광채는 지질학적 우연과 광학적 원리가 겹쳐진 결과였다. 2. 카라라 대리석은 지질학적으로 보면 수억 년 전의 바다에서 태어났다. 아푸아네 알프스가 있던 자리에는 한때 .. 2026. 9. 24.
3-7화. 다비드의 자리 — 광장의 정치학 1. 당신의 도시 한복판에 새로운 조각상이 세워진다고 상상해 보자. 어떤 사람은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조각상의 의미를 두고 논쟁을 벌일 것이다. 예술 작품이 공공장소에 놓인다는 것은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그 공간을 어떤 가치로 채울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선언일 수 있다. 1504년 피렌체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미켈란젤로가 완성한 《다비드》가 어디에 세워질 것인가를 두고 도시 전체가 며칠 동안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그 논쟁의 결과는 한 조각상의 운명을 넘어, 피렌체 공화국의 정체성을 바꾸어 놓았다. 2. 《다비드》는 처음부터 광장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었다. 원래 이 대리석 블록은 피렌체 대성당의 지붕 위에 올릴 예언자상을 위해 준비된.. 2026. 9. 22.
3-6화. 약탈자의 꿈 — 왜 대리석은 계속 약탈되었는가 1. 당신은 오래된 건물이 철거되는 현장을 본 적이 있는가. 재개발 구역의 낡은 주택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서 파낸 벽돌과 철근과 목재가 트럭에 실려 어딘가로 향한다. 그중 일부는 폐기되지만, 일부는 재활용된다. 오래된 건축 자재를 다시 쓰는 일은 오늘날 '자원 순환'이라는 이름으로 장려되곤하지만, 사실 이것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반복해 온 행위이다. 그리고 그 오래된 재활용의 역사에서 하나의 사례가 바로 로마의 대리석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과 조각에 사용된 대리석 중 상당수는 새로 채석된 것이 아니라, 천 년 전 로마 제국의 유적에서 뜯어낸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약탈이라 불렀고, 동시에 물류의 합리적 선택이라 여겼다. 2. 로마 제국의 전성기에 건설된 신전과 욕장과 원형 경기장에는 지중해 .. 2026.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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