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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물류: 유럽에서 식민지로의 네트워크

by 이박사의 지식창고 2025. 5. 5.

금번 글은 인류사에 있어서 아픈 역사인 북아메리카 식민지 관련사를 기술합니다. 유럽 강대국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구축된 물류 네트워크는 단순한 상품 이동 경로를 넘어 세계 경제 질서와 문명의 발전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였습니다.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열강은 북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복잡한 물류 시스템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시스템은 유럽의 군사력과 상품을 식민지로 운송하고, 식민지의.귀중한 자원을 유럽으로 가져오는 쌍방향 흐름을 형성했습니다. 특히 하바나, 보스턴, 뉴욕과 같은 주요 항구 도시들은 이러한 대서양 무역의 중심지로 기능하며 복잡한 물류 네트워크의 중요한 결절점 역할을 했습니다. 본 연구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식민지 간의 물류 네트워크의 형성과 발전, 그 작동 방식과 역사적 의의를 고찰합니다.

대서양 무역 시스템의 발달과 물류 네트워크의 형성

스페인의 갈레온 시스템과 하바나의 중추적 역할

16세기 대서양 무역의 초기 발전 단계에서 스페인은 '갈레온 함대 시스템'(Carrera de Indias)이라는 혁신적인 물류 네트워크를 개발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신세계에서 채굴된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본국으로 운송하는 핵심 경로였습니다. 알레한드로 데 라 푸엔테의 연구에 따르면, 하바나는 이 시스템에서 결정적인 중계 지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바나 항구를 통해 연례 스페인 갈레온 함대가 운항했으며, 유럽으로 향하는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이 이곳을 경유했습니다.
하바나의 물류 기능은 세 가지 차원에서 운영되었습니다. 첫째, 대륙 간 차원에서 하바나는 신세계의 모든 부와 상품이 스페인이라는 최종 목적지로 집결하는 중심지였습니다. 둘째, 대륙 내 무역 차원에서는 베라크루스, 카르타헤나 등 스페인령 아메리카의 여러 도시에서 생산된 물자가 하바나로 운송되었습니다. 이 물자 중 일부는 하바나 자체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대부분은 금과 은처럼 후에 스페인 리스본 으로 재선적되었습니다. 셋째, 하바나는 지역 내 물류의 중심지로서 카리브해 지역의 다양한 상품이 집결하고 분배되는 허브 역할을 했습니다.
하바나가 이처럼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지리적 위치의 탁월함 때문이었습니다. 플로리다 해협 입구에 위치한 하바나는 멕시코 만에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관문이었으며, 멕시코와 페루의 광산에서 채굴된 귀금속이 스페인으로 운송되는 경로에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또한 하바나는 뛰어난 천연 항구를 갖추고 있어 대형 선박들의 안전한 정박이 가능했고, 이는 스페인이 북아메리카 식민지 물류의 중심지로 하바나를 선택하게 된 핵심 이유였습니다.

De Carreira da India@wikimedia.org

영국의 삼각무역과 북대서양 물류 네트워크

영국은 스페인과는 다른 독특한 물류 네트워크를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17세기부터 18세기 사이에 영국은 북아메리카 식민지, 서인도 제도, 영국 본토를 연결하는 삼각무역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 시스템에서 영국은 제조품을 식민지로 수출하고, 북아메리카 식민지는 식량과 원자재를 서인도 제도로 공급했으며, 서인도 제도는 설탕, 럼, 면화 등을 영국으로 수출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자메이카와 북아메리카 대륙 식민지 사이의 밀접한 무역 관계입니다. 1752년부터 1769년까지의 선박 기록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자메이카의 설탕 플랜테이션과 노예제도는 북아메리카 대륙 식민지에서 공급되는 물품과 식량 없이는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이 연구는 북미 대륙 식민지가 자메이카의 노예제도를 얼마나 깊이 지원했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자메이카가 영국 대서양 경제 내에서 중요한 지역적 허브로 기능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무역 네트워크의 발전은 항해 기술과 선박 건조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에 힘입었습니다. 18세기 이전까지 영국 해군의 작전은 주로 유럽 수역에 국한되어 있었으나, 점차 해군 건축과 항해 기술, 식품 보존 및 건강 관리 방법의 개선으로 인해 선박들이 본국 항구에서 더 멀리 더 오래 운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물류 네트워크의 효율성과 신뢰성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영국발 삼각무역 지도/1700년 이후, 이송되는 노예들의 수가 크게 증가하여 대략 850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노예가 되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되었을것으로 추정됩니다.@BBC.uk

식민지 물류 시스템의 구조와 운영

영국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물류 인프라

영국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물류 체계는 주요 항구 도시, 내륙 수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도로망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찰스턴과 같은 주요 항구 도시들은 유럽과의 무역에 있어 핵심적인 관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도시들은 단순한 수출입 지점을 넘어 물자의 저장, 분배, 재분배를 담당하는 복합적인 물류 중심지로 기능했습니다.
18세기 중반, 특히 1756년부터 1770년까지 영국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인식과 접근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주된 목적은 식민지에 대한 경제적 통제를 강화하고 자원 추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1763년 7년 전쟁 종결 후, 영국은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통치 체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면서 물류 시스템 역시 함께 정비했습니다.
영국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물류 시스템은 자원의 효율적인 추출과 이동에 최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발트해가 프랑스와 그 동맹국들에 의해 봉쇄되자, 영국 해군은 선박 건조에 필요한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주목했습니다. 로렌시안 고원과 북아팔라치아의 울창한 숲은 영국 조선소의 핵심적인 목재 공급원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상인, 외교관, 그리고 위임 대리인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자원을 수집했고, 이는 생태적 관계의 재편과 새로운 지역의 제국 경제 통합으로 이어졌습니다.

스페인 식민지 경제 체제와 물류 관리

스페인의 식민지 물류 시스템은 '오브라헤'(Obraje)라는 독특한 경제 제도를 통해 구조화되었습니다.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현재의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일부)에서 운영된 이 공장식 작업장은 주로 직물 생산에 주력했습니다. 이러한 생산 시설은 스페인 식민지 물류 체계의 핵심 요소로, 지역 내 물자 생산과 유통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페루의 오브라헤를 나타낸 그림. 스페인 왕실은 상업적 이익을 보호하고 유리하기 위해 새로운 식민지에서 직물 생산을 금지했지만, 미국에서 이러한 제품에 대한 수요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왕은  낮은 품질의 직물만 제조하는 데 전념한다는 조건으로 오브라제의 설립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1570 년까지, 페루 경제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스페인의 식민지 물류 시스템은 '플로타 이 갈레오네스'(Flota y Galeones) 체제를 중심으로 운영되었습니다. 매년 스페인에서 출발하는 두 개의 상선단이 신세계로 항해했는데, 하나의 선단은 '플로타'로 베라크루스를, 다른 하나는 '갈레오네스'로 카르타헤나와 포르토벨로를 목적지로 삼았습니다. 이 선단들은 유럽의 상품을 아메리카로 운송하고, 귀환 시에는 귀금속과 기타 상품을 스페인으로 가져왔습니다.
스페인 식민지의 물류 시스템은 '집중과 통제'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었습니다. 세비야(후에는 카디스)에 위치한 '인디아스 무역원'(Casa de Contratación)은 모든 식민지 무역을 엄격히 감독하며, 선박, 화물, 승객에 대한 세세한 기록을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중앙집중식 통제는 물류의 효율성보다는 왕실의 수입을 보장하고 밀수를 방지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카를로스 파릴라(Carlos Parrilla)의 인도의 함대@laamericaespanyola.com

식민지 간 물류 네트워크와 지역 경제 통합

북아메리카-카리브해 무역 관계의 중요성

북아메리카 대륙 식민지와 카리브해 지역 간의 무역은 식민지 경제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특히 18세기 중반 자메이카와 북아메리카 식민지 간의 무역 관계는 양측에게 매우 중요했습니다. 북아메리카 식민지는 자메이카의 설탕 플랜테이션에 목재, 식량, 가축 등 필수적인 물자를 공급했고, 자메이카는 그 대가로 설탕, 당밀, 럼주 등을 북아메리카로 수출했습니다.
자메이카 킹스턴의 선박 기록을 면밀히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1752년부터 1769년 사이에 5,227건의 입항 기록과 4,620건의 출항 기록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북아메리카와 서인도 제도 간 무역의 규모와 특성, 그 경제적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합니다. 연구 결과, 북아메리카 대륙 식민지가 자메이카의 노예제도 유지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 무역 관계는 북아메리카 식민지 상인들에게 중요한 판로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서인도 제도의 플랜테이션 경제를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데 필수적이었습니다. 카리브해 지역의 제한된 토지는 식량 생산보다는 수출용 작물 재배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북아메리카로부터의 식량 공급은 이 지역 경제 시스템의 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습니다.

스페인 제국 내 물류 네트워크의 통합과 분화

스페인 제국 내부에서 복잡한 물류 네트워크가 구축되었습니다. 특히 16세기 하바나는 대륙 간, 대륙 내, 지역 내 무역을 아우르는 핵심 허브로 성장했습니다. 하바나는 베라크루스, 카르타헤나 등 다른 스페인계 아메리카 도시들과 활발한 교역을 통해 제국의 물류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제국의 물류 네트워크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진적으로 분화되었습니다. 지리적 거리와 통신의 어려움, 지역별 특성과 요구사항의 차이, 그리고 지역 엘리트의 이해관계 등이 이러한 분화를 가속화했습니다. 특히 18세기 후반 몬테비데오(현재의 우루과이)와 같은 지역은 독특한 경제 구조와 물류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몬테비데오의 사례는 스페인 식민지 내 부의 불평등 구조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18세기 후반 몬테비데오의 부의 불평등 수준은 1774년 북아메리카 영국 식민지와 비슷했으며, 당시 유럽의 산업화 이전 경제보다는 낮았습니다. 이 사회는 대체로 비교적 풍요로운 중산층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핵심적인 자산은 소수 엘리트 계층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구조는 지역 물류 네트워크의 형성과 운영 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물류 보호와 제국 간 경쟁

해군력과 물류 보호의 상관관계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물류 네트워크를 보호하는 것은 유럽 열강에게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특히 영국은 18세기에 북아메리카 식민지 방어를 위한 해군 전략을 정교하게 발전시켰습니다. 1739년부터 1763년까지의 기간은 영국 해군의 북아메리카 방어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8세기 이전까지 영국 해군의 작전은 주로 유럽 수역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북아메리카 해역에서의 교전은 단편적이고 산발적인 사건으로, 영국 본토 인근 유럽 서부 해안의 주요 전투 지역과는 거의 연관성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17세기 말부터 해군 건축과 항해 기술, 식품 보존 및 건강 관리 방법이 개선되면서 선박들은 본국 항구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장기간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혁신은 영국이 북아메리카 해역에서 상선을 보호하고 프랑스와 스페인의 위협에 대응하는 능력을 크게 강화했습니다. 특히 7년 전쟁(1756-1763) 기간 동안 영국 해군은 북아메리카와 카리브해에서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식민지 물류 네트워크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했습니다.

하바나 전투(1762)는 7년 전쟁의 일환으로 1762년 3월부터 8월까지 벌어진 군사 행동이다. 영국군은 당시 카리브해의 중요한 스페인 해군 기지였던 하바나를 포위하고 점령했으며 스페인 해군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포위 기간 동안 영국군은 2,764명의 전사자, 부상자, 포로 또는 탈영병을 잃었지만, 10월 18일까지 4,708명이 질병으로 사망했다. 가장 고갈된 여단 중 하나는 북미로 이동했으며, 그가 도착한 지 한 달 만에 360명의 병력을 추가로 잃었다. 아바나는 1763년 파리 조약에 따라 스페인에 반환되어 공식적으로 전쟁을 종식시켰지만, 스페인은 플로리다와 미노르카를 영국에 양도하고 마닐라 몸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스페인은 프랑스의 편에서 전쟁에 개입한 것에 대한 대가와 플로리다를 잃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 프랑스령 루이지애나를 받았다/ 찰스 놀스 경의 하바나 앞바다에서 스페인 함대와의 교전 @리처드 패튼

식민지 물류를 둘러싼 제국 간 갈등과 협상

스페인 제국 내부에서 복잡한 물류 네트워크가 구축되었습니다. 특히 16세기 하바나는 대륙 간, 대륙 내, 지역 내 무역을 아우르는 핵심 허브로 성장했습니다. 하바나는 베라크루스, 카르타헤나 등 다른 스페인계 아메리카 도시들과 활발한 교역을 통해 제국의 물류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제국의 물류 네트워크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진적으로 분화되었습니다. 지리적 거리와 통신의 어려움, 지역별 특성과 요구사항의 차이, 그리고 지역 엘리트의 이해관계 등이 이러한 분화를 가속화했습니다. 특히 18세기 후반 몬테비데오(현재의 우루과이)와 같은 지역은 독특한 경제 구조와 물류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몬테비데오의 사례는 스페인 식민지 내 부의 불평등 구조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18세기 후반 몬테비데오의 부의 불평등 수준은 1774년 북아메리카 영국 식민지와 비슷했으며, 당시 유럽의 산업화 이전 경제보다는 낮았습니다. 이 사회는 대체로 비교적 풍요로운 중산층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핵심적인 자산은 소수 엘리트 계층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구조는 지역 물류 네트워크의 형성과 운영 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식민지 물류와 사회 변동

식민지 물류가 사회구조에 미친 영향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물류 네트워크는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사회 구조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식민지 항구 도시들은 유럽과의 무역을 통해 새로운 사회계층과 직업군이 생겨나는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상인, 선원, 창고 관리인, 통역사, 중개인 등 다양한 직업들이 물류 활동을 중심으로 번성했습니다.
몬테비데오의 사례는 스페인 식민지에서 물류와 사회구조의 긴밀한 관계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18세기 후반 몬테비데오의 유산 기록과 인구 기록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이 사회의 부의 불평등 수준은 1774년 북아메리카 영국 식민지와 비슷했으며, 같은 시기 유럽의 산업화 이전 경제보다는 낮았습니다. 이 사회는 대체로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중산층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일부 중요 자산은 엘리트 계층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구조는 물류 네트워크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엘리트 계층은 주로 국제 무역과 대규모 토지 소유를 통해 부를 축적했으며, 중산층은 지역 상업과 소규모 제조업, 그리고 서비스 제공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물류 네트워크는 이러한 계층 구조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통해 사회적 이동성의 통로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물류 네트워크에서의 여성과 젠더 역할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물류 네트워크에서 젠더 역할은 핵심적인 구조적 요소였습니다. 16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북아메리카 여성들은 무역, 교환, 경제 생산, 재생산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공동체의 일상적 생존을 위해 헌신했으며, 경제적, 정치적 확장의 물질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가족, 가정, 공동체의 연계는 북아메리카의 각 지역에 시장 경제를 내재화했습니다. 젠더는 신용 네트워크, 노동 통제, 재산 소유의 법적 패턴을 통해 작용했습니다. 유럽인들이 토지를 점유하고, 자원을 추출하며, 수익성 높은 작물을 재배하고, 유럽 제조품의 소비자 기반을 형성하려 했던 식민주의는 지역 및 대서양 횡단 경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농업, 무역, 재생산에서의 여성 노동은 대서양 횡단 노예 무역, 장거리 투자를 위한 혁신적인 금융 도구, 그리고 열대 식료품(차, 커피, 설탕)과 건조 상품에 대한 급증하는 수요가 만들어낸 확장하는 국제 경제의 맥락 속에서 변모했습니다. 여성들은 이러한 교환 회로에 참여할 수 있는 화폐나 상품을 획득하기 위해 자신들의 노동을 전략적으로 조정했습니다.
또한 식민지 시대와 혁명기 북아메리카의 전쟁에서 여성과 남성 모두의 역할은 16세기 마지막 사분기부터 19세기 첫 사분기까지 극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특히 7년 전쟁의 맥락에서 원주민, 영국, 프랑스 백인 정착민, 그리고 영국 및 프랑스 군대의 군사적 남성성에 대한 인식이 재편되었고, 이와 함께 여성의 전쟁 참여 방식과 여성성에 대한 표현도 근본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이러한 젠더 역할의 변화는 물류 네트워크의 발전과 상호작용하며 식민지 사회의 변동을 가속화했습니다.

원주민과 식민지 물류의 상호작용

원주민 무역 네트워크와 유럽 물류 시스템의 통합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에 도착하기 전부터 원주민들은 이미 정교한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유럽 식민세력은 이러한 기존의 원주민 무역로와 연결망을 자신들의 물류 체계에 원활하게 편입시켰습니다. 특히 모피 무역은 원주민과 유럽 정착민 사이의 핵심적인 경제적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통합 과정에서 원주민과 정착민 간의 결혼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식민지 시대 북아메리카에서 이러한 결혼은 모피 무역 시기에 정착민 남성과 북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양측이 활용한 교묘한 경제적 전략이었습니다. 이 혼인 관계는 각자의 고유한 목적에서 비롯되었으며, 양측에 상호 이익을 제공했습니다.
원주민 여성, 정착민 남성, 그리고 관련 이해관계자들은 생물학적, 심리적, 경제적, 그리고 제국주의적 측면에서 다양한 이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혼인 관계의 부정적인 측면은 주로 식민화의 후기 단계, 즉 유럽의 영향력과 통제력이 대륙 전역으로 확산되었을 때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원주민-정착민 간 결혼의 복잡한 유산과 식민화의 파괴적인 영향은 현재까지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원주민 경제의 변화와 적응

유럽의 물류 시스템이 북아메리카에 도입되면서 원주민 경제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전통적인 생계 경제에서 상품 교환 경제로의 전환은 많은 원주민 사회의 구조와 기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특히 유럽 상품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하면서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경제 활동을 유럽의 물류 네트워크에 맞게 조정했습니다. 사냥, 어업, 농업과 같은 전통적인 활동들이 이제는 유럽 시장을 위한 상품 생산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원주민 사회의 자급자족 능력을 약화시키고 유럽 물류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수동적인 희생자만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원주민 집단들은 유럽의 물류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적응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일부 원주민 집단들은 유럽 강대국들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하며 정치적, 경제적 이점을 얻기도 했습니다.

결론: 식민지 물류의 유산과 현대적 의의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물류 네트워크는 단순한 상품과 사람의 이동 경로를 넘어, 새로운 경제 질서와 사회 구조를 형성하는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유럽에서 북아메리카로 확장된 이 물류 시스템은 대서양 세계의 통합을 촉진하고, 글로벌 자본주의의 초기 형태를 발전시켰습니다.

스페인의 갈레온 함대 시스템, 영국의 삼각무역 네트워크, 그리고 북아메리카-카리브해 지역 간의 무역 관계는 모두 오늘날 글로벌 공급망의 역사적 선구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물류 네트워크는 자원의 효율적인 추출과 이동을 가능케 하는 동시에, 식민지 사회의 계층 구조와 젠더 역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식민지 물류 네트워크는 또한 해군력의 발전과 제국 간 경쟁을 촉진했습니다. 유럽 열강들은 자국의 물류 네트워크를 보호하고 확장하기 위해 해군력을 증강했으며, 이는 종종 무력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과 경쟁 속에서도 북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은 자신만의 지정학적 이해와 관점을 발전시켰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물류 네트워크는 현대 글로벌 무역 시스템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사례를 제공합니다. 또한 물류 시스템이 단순한 경제적 기능을 넘어, 사회 구조와 문화적 정체성 형성에 미치는 깊은 영향을 보여줍니다. 식민지 시대의 물류 네트워크가 남긴 불평등과 의존의 패턴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북아메리카 사회의 많은 측면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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